그리스와 튀르키예는 같은 군사동맹 나토의 회원국입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수십 년째 영해와 자원을 다퉈 왔습니다. 같은 바다를 두고 한쪽은 법을, 다른 한쪽은 형평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와 튀르키예, 무엇이 갈등을 만드는가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대립은 1923년 로잔 조약이 남긴 경계의 모호함에서 출발합니다. 그리스는 수많은 섬을 근거로 에게해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하고, 튀르키예는 본토와 연결된 대륙붕을 근거로 이를 반박합니다. 2026년 1월 그리스가 에게해 영해를 12해리로 확장하겠다고 밝히자, 튀르키예는 이를 자국의 공해 접근을 막는 조치로 받아들였습니다. 튀르키예 의회는 일찍이 이런 확장을 전쟁 사유로까지 규정한 바 있습니다. 키프로스 분단과 인근 천연가스 개발까지 더해지며 갈등의 무게는 더 커집니다. 두 나토 동맹국이 여전히 에게해의 앙숙으로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미러 이미징 — 상대를 거울로 보는 착각
미러 이미징은 상대도 나처럼 생각하리라 가정하는 인지적 편향입니다. 그리스는 국제해양법이 자명한 기준이며 튀르키예도 이를 따라야 한다고 가정합니다. 튀르키예는 에게해가 반쯤 닫힌 특수한 바다이므로 정치적 협상이 당연하다고 가정합니다. 양측 모두 자신의 틀을 보편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한쪽의 합법적 권리 행사가 다른 쪽에는 도발로 비치고, 전투기들이 에게해 상공에서 맞서곤 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에게해 분쟁의 본질은 바다의 다툼이기 이전에, 법과 형평이라는 서로 다른 거울로 같은 수면을 비추는 데 있습니다.
알로센트리즘(Allocentrism)이란? 타자(Allo)를 인식의 중심(centrum)에 두는 사고방식입니다. 미러 이미징의 반대 개념으로, 상대를 상대의 언어와 논리로 이해할 때 비로소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알로센트리즘 — 상대의 눈으로 세상 보기
알로센트리즘은 세계의 중심을 나에서 상대로 옮기는 인지적 전환입니다. 그리스가 튀르키예의 공해 접근 불안과 안보 우려를 그 내적 논리로 이해하고, 튀르키예가 그리스의 섬 주민과 국제법에 근거한 권리 주장을 그 맥락에서 받아들일 때, 대화의 여지가 생깁니다. 실제로 2023년 양국 정상은 적대를 청산하자는 공동 선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같은 진영에 속하고도 충돌하는 이웃의 구조는 한국과 일본 편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협력의 가능성과 반론
물론 알로센트리즘이 영해의 경계를 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주권과 자원이 걸린 사안에서는 이해가 곧 합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반론이 타당합니다. 더구나 양국의 국내 정치가 강경 여론에 휘둘릴 때, 화해의 동력은 쉽게 약해집니다. 한 세기 가까이 쌓인 앙숙의 기억은 작은 충돌의 불씨도 빠르게 키웁니다. 그럼에도 상대의 논리를 먼저 읽는 쪽이 우발적 충돌의 위험을 줄이고 협상의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결론 — 거울을 다시 보는 법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같은 동맹 안에서도 서로를 겨누는 거울 앞의 두 나라입니다. 거울에 비친 상대를 위협으로만 가정하면 에게해의 긴장은 깊어지고, 상대의 맥락으로 읽으면 공존의 길이 열립니다. 다음 글에서는 한 종교 안의 거울,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을 다루겠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