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두 강국, 이란과 이스라엘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여깁니다. 2025년의 12일 전쟁과 2026년의 충돌은 그 적대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주었습니다. 두 나라의 대립을 알로센트리즘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 무엇이 갈등을 만드는가
이란과 이스라엘의 적대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본격화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과 무장 세력 지원을 자국 생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규정합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서방이 중동에 세운 전초 기지로 보고, 그에 맞선 저항을 정당한 것으로 여깁니다.
양국은 직접 국경을 맞대지 않으면서도 역내 여러 전선을 통해 오랜 그림자 전쟁을 이어 왔습니다. 그 그림자가 2025년 이후 정면 충돌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25년 6월의 12일 전쟁에서 양측은 미사일과 공습을 주고받았고, 2026년에는 더 큰 충돌로 번졌습니다. 같은 무기 한 발을 두고 한쪽은 방어라 부르고 다른 쪽은 침략이라 부릅니다.
미러 이미징 — 상대를 거울로 보는 착각
미러 이미징은 상대를 자신의 공포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는 착각입니다. 이스라엘은 반복된 박해의 기억 위에서 핵을 가진 이란을 절멸의 위협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선제 타격이 곧 생존이라는 논리에 이릅니다.
반대로 이란은 포위된 혁명 국가라는 자기 인식 속에서 이스라엘과 서방의 압박을 체제 말살 시도로 읽습니다. 두 나라 모두 상대의 행동을 최악의 의도로 해석하며, 그 해석이 다시 상대의 최악을 부릅니다. 공포가 정책이 되면 상대의 모든 행동이 위협의 증거로만 읽힙니다.
필자가 보기에, 이 대립의 위험은 양측 모두 자신의 두려움을 상대의 본심으로 확신한다는 데 있습니다.
알로센트리즘(Allocentrism)이란?
'타자(Allo)'를 인식의 '중심(centrum)'에 두는 사고방식입니다.
미러 이미징의 반대 개념으로, 상대를 상대의 언어와 논리로
이해할 때 비로소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알로센트리즘 — 상대의 눈으로 세상 보기
알로센트리즘은 세계의 중심을 나에서 상대로 옮기는 인지적 전환입니다. 이스라엘의 강경함을 이해하려면 작은 영토와 반복된 전쟁이 만든 생존 불안을 그들의 언어로 읽어야 합니다. 동시에 이란의 적대를 단순한 광신으로 보지 않고, 혁명 이후 누적된 고립과 포위 의식의 산물로 읽어야 합니다.
이는 어느 쪽을 옹호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끝없는 보복의 고리를 끊을 지점을 찾기 위한 전제입니다. 두 사회가 공유한 깊은 트라우마를 외면한 채 내리는 결정은 늘 과잉으로 흐릅니다. 미국과 이란의 구도는 앞선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협력의 가능성과 반론
직접적 평화는 아직 멀어 보이지만, 국제 사회의 중재와 핵 사찰 복원 논의는 최소한의 안전판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존재를 부정하는 상대와 어떤 이해가 가능하냐는 회의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공포를 모르는 억지력은 끝없는 군비 경쟁만 부릅니다. 공포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 역설적으로 안전의 출발점입니다. 완전한 화해가 아니더라도 충돌의 강도를 낮추는 합의는 가능합니다.
결론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립은 미러 이미징이 어떻게 공포를 전쟁으로 바꾸는지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평화의 첫걸음은 서로의 생존 공포를 그들의 언어로 읽는 데서 시작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같은 렌즈로 한국과 일본의 역사 갈등을 분석하겠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