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뉴스를 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어째서 똑똑한 나라들이 서로를 그토록 자주 오해하는 것일까요. 그 오해의 뿌리에는 미러 이미징이라는 인지적 함정이 있습니다. 이 글은 미러 이미징과 그것을 넘어서는 알로센트리즘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우리는 왜 상대를 오해하는가
국가 사이의 충돌은 흔히 이해관계의 차이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는 인식의 문제가 자리합니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두 나라는 전혀 다른 사실을 읽습니다.
한쪽이 방어라 부르는 행동을 다른 쪽은 도발로 받아들입니다. 이 어긋남은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해석하는 틀이 다르기 때문에 생깁니다. 대립의 출발점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보는 렌즈입니다. 이 렌즈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상대가 비합리적이라는 결론에만 도달하게 됩니다.
미러 이미징 — 상대를 거울로 보는 착각
미러 이미징은 상대도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리라 가정하는 인지적 편향입니다. CIA의 분석관 리처즈 휴어는 저서 정보분석의 심리학에서 이를 분석 실패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였습니다.
근거가 부족할 때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사고방식을 상대에게 투사합니다. 내가 그들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문장이 바로 미러 이미징의 전형입니다. 휴어는 이 함정이 전문성만으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증거가 끝나는 지점에서 분석가의 마음이 그 빈자리를 자신의 상식으로 채우기 때문입니다. 1998년 인도의 핵실험을 서방 정보기관이 예측하지 못한 사건도 같은 함정의 결과였습니다.
필자 역시 국제 갈등을 단순한 이익 다툼으로만 보았으나, 미러 이미징의 렌즈를 알고 나자 같은 뉴스가 전혀 다르게 읽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알로센트리즘(Allocentrism)이란?
'타자(Allo)'를 인식의 '중심(centrum)'에 두는 사고방식입니다.
미러 이미징의 반대 개념으로, 상대를 상대의 언어와 논리로
이해할 때 비로소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알로센트리즘 — 상대의 눈으로 세상 보기
알로센트리즘은 세계의 중심을 나에서 상대로 이동시키는 인지적 전환입니다. 상대를 나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대신, 상대가 살아온 역사와 두려움과 가치의 언어로 다시 읽는 작업입니다.
이는 상대에게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행동이 그들의 내부 논리 안에서는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두려움을 읽어내면 같은 군사 행동도 공격이 아니라 방어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 인정에서 비로소 협상의 접점이 드러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역시 양측이 서로를 자신의 거울로만 본 결과였습니다.
두 렌즈가 만드는 정반대의 결과
미러 이미징은 대립을 심화시켜 갈등과 결렬로 향합니다. 알로센트리즘은 이해를 확장시켜 협력과 공존으로 향합니다. 두 렌즈의 차이는 곧 외교의 성패를 가릅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상대의 논리를 이해하는 일이 곧 굴복이나 유화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그러나 알로센트리즘은 양보가 아니라 정확한 정세 판단을 위한 도구입니다. 상대를 오해한 채 내리는 강경책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미러 이미징과 알로센트리즘은 국제관계를 읽는 가장 기본적인 두 렌즈입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의 모든 분석은 이 두 개념을 기준으로 전개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두 개념을 더 자세히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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