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지만 가장 오해가 깊은 이웃이기도 합니다. 두 나라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앞에 마주 서 있습니다. 그 거울이 협력의 통로가 될지 갈등의 벽이 될지는 시선의 방향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무엇이 갈등을 만드는가
2026년 한일관계는 셔틀외교가 완전히 정착된 협력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올해에만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고,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함께 기념했습니다. 그러나 표면 아래에는 독도 영유권, 과거사 인식, 강제동원 배상 같은 미해결 의제가 여전히 잠복해 있습니다. 한국은 역사적 정의의 회복을 원하고, 일본은 1965년 협정으로 법적 문제가 종결됐다고 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두 나라는 전혀 다른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어도 민감한 사안 하나가 불거지면 정상 간 대화가 멈추곤 했던 것이 지난 수십 년의 패턴이었습니다.
미러 이미징 — 상대를 거울로 보는 착각
미러 이미징은 상대도 나처럼 생각하리라 가정하는 인지적 편향입니다. 한국은 일본이 한국처럼 역사를 도덕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를 기대합니다. 일본은 한국이 일본처럼 과거를 법과 조약의 틀에서 매듭짓기를 기대합니다. 양측 모두 상대의 머릿속에 자기 자신을 투영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다르게 반응할 때마다 왜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실망과 분노가 반복됩니다.
필자가 보기에 한일 갈등의 본질은 사실관계의 다툼이 아니라, 서로를 자기 복사본으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알로센트리즘 — 상대의 눈으로 세상 보기
알로센트리즘은 세계의 중심을 나에서 상대로 옮기는 인지적 전환입니다. 한국이 일본의 전후 평화국가 정체성과 안보 불안을 그 내적 논리로 이해하고, 일본이 한국의 식민 경험과 주권 회복 서사를 그 맥락에서 받아들일 때 대화의 결이 달라집니다. 2026년 정상회담이 중앙정부의 거대 담론을 넘어 지방 도시에서 산업과 청년, 문화 협력을 전면에 올린 것은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상대의 언어로 협력의 접점을 넓히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란과 이스라엘 편에서도 정체성의 충돌을 다른 각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협력의 가능성과 반론
물론 알로센트리즘이 만능은 아닙니다. 이해가 곧 양보를 뜻하지는 않으며, 일본의 우경화나 한국 내 여론의 반발이라는 현실 변수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일 최초의 군사 협력 실무 논의처럼 안보가 두 나라를 묶더라도, 역사 사안이 불거지면 셔틀외교가 다시 멈출 수 있다는 우려도 타당합니다. 다만 상대의 논리를 먼저 파악하는 쪽이 충격을 흡수하고 관계를 관리할 여지를 더 많이 확보합니다.
결론 — 거울을 다시 보는 법
한국과 일본은 보기 드문 거울입니다. 두 나라는 같은 진영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긴밀히 얽힌 경제 파트너이면서도, 현재의 위협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두고 부딪칩니다. 한국은 일본의 태도에서 역사적 잘못의 부정을 읽고, 일본은 한국의 요구에서 끝나지 않는 청구를 읽습니다. 갈등의 뿌리가 이해관계가 아니라 기억에 있기에, 이 거울은 협력의 조건을 다 갖추고도 좀처럼 맑아지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 가장 풀기 어려운 상대가 되는 역설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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