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중동은 다시 전쟁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은 반세기 가까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해 왔습니다. 두 나라가 같은 협상 테이블 앞에서도 끝내 엇갈리는 이유를 알로센트리즘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과 이란, 무엇이 갈등을 만드는가
미국과 이란의 불신은 1979년 이슬람 혁명과 인질 사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수십 년간 핵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중동 내 세력 확장을 둘러싼 충돌이 이어졌습니다. 2015년 핵 합의는 한때 출구처럼 보였으나 결국 붕괴하였습니다.
2026년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상대로 대규모 공습을 단행하였고, 최고지도자가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며 맞섰고, 미국은 해상 봉쇄로 응수하였습니다. 핵 사찰은 2월 말 이후 멈춘 상태이며, 휴전 연장과 협상 재개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세기에 걸친 적대의 골이 임계점을 넘은 셈입니다.
미러 이미징 — 상대를 거울로 보는 착각
미러 이미징은 상대도 나처럼 판단하리라 가정하는 인지적 편향입니다. 미국은 충분한 압박과 비용을 가하면 상대가 합리적으로 굴복하리라 기대합니다. 무조건 항복이라는 요구는 그 사고방식의 압축판입니다.
반대로 이란은 외부의 개입을 언제나 체제 전복 시도로 읽습니다. 1953년 정변과 1979년의 기억이 그 렌즈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에게 핵은 협상 카드이지만, 이란에게 핵은 침공을 막는 생존 보험에 가깝습니다. 두 나라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를 봅니다. 압박은 굴복이 아니라 오히려 결집을 부르기도 합니다.
필자가 보기에, 이 전쟁의 비극은 양측 모두 상대가 자신의 압박에 곧 무너지리라 오판한 데서 깊어졌습니다.
알로센트리즘(Allocentrism)이란?
'타자(Allo)'를 인식의 '중심(centrum)'에 두는 사고방식입니다.
미러 이미징의 반대 개념으로, 상대를 상대의 언어와 논리로
이해할 때 비로소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알로센트리즘 — 상대의 눈으로 세상 보기
알로센트리즘은 세계의 중심을 나에서 상대로 옮기는 인지적 전환입니다. 미국의 강경책을 이해하려면 핵 확산을 막겠다는 오랜 안보 원칙과 동맹 보호의 논리를 그들의 언어로 읽어야 합니다. 동시에 이란의 저항을 단순한 호전성으로 보지 않고, 외세 개입의 역사가 남긴 깊은 불신의 산물로 읽어야 합니다.
이는 어느 한쪽을 정당화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상대의 불신을 비합리로 치부하는 순간 협상의 문은 닫힙니다. 협상의 접점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찾기 위한 전제입니다. 두 개념의 기본 원리는 앞선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협력의 가능성과 반론
2026년 들어 파키스탄의 중재 채널과 휴전 연장 논의가 가느다란 통로를 열어 두고 있습니다. 작은 합의의 축적이 알로센트리즘의 출발점입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적대국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곧 유화이며 핵 확산을 방치한다는 비판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진짜 동기를 모르는 압박은 오히려 파국을 부릅니다. 정확한 이해가 곧 안전의 조건입니다. 중재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결론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미러 이미징이 어떻게 불신을 전쟁으로 키우는지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출구의 첫걸음은 상대의 두려움을 그들의 언어로 읽는 데서 시작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같은 렌즈로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립을 분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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