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영국령 인도는 종교를 기준으로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 분단선 위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80년 가까이 카슈미르를 두고 대치해 왔습니다. 같은 땅을 바라보는 두 나라의 거울에는 서로 다른 정의가 비칩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무엇이 갈등을 만드는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립은 1947년 분단의 상처에서 출발합니다. 힌두 다수의 인도와 무슬림 국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의 귀속을 두고 세 차례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실질통제선을 사이에 두고 충돌합니다. 2019년 인도가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박탈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해당 지역 전체를 직할령으로 삼겠다고 선언하면서 긴장이 다시 높아졌습니다. 인더스강 상류의 수자원까지 걸려 있어 갈등의 무게는 더 커집니다. 인도는 카슈미르를 자국 영토의 일부로, 파키스탄은 무슬림 주민의 자결이 보장돼야 할 미완의 과제로 봅니다. 양국이 모두 핵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이 대치를 한층 위험하게 만듭니다.
미러 이미징 — 상대를 거울로 보는 착각
미러 이미징은 상대도 나처럼 생각하리라 가정하는 인지적 편향입니다. 인도는 파키스탄을 테러를 후원하는 불안정 세력으로 읽고, 파키스탄은 인도를 무슬림을 억압하는 거대 위협으로 읽습니다. 양측 모두 상대의 방어를 공세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한 번의 테러나 공습은 곧바로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분단의 기억이 그 불씨에 기름을 붓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카슈미르의 비극은 영토의 문제이기 이전에, 두 나라가 분단의 트라우마를 통해서만 상대를 바라보는 거울의 착시입니다.
알로센트리즘(Allocentrism)이란? 타자(Allo)를 인식의 중심(centrum)에 두는 사고방식입니다. 미러 이미징의 반대 개념으로, 상대를 상대의 언어와 논리로 이해할 때 비로소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알로센트리즘 — 상대의 눈으로 세상 보기
알로센트리즘은 세계의 중심을 나에서 상대로 옮기는 인지적 전환입니다. 인도가 파키스탄의 건국 정체성과 분단의 불안을 그 내적 논리로 이해하고, 파키스탄이 인도의 다종교 국가로서의 통합 부담을 그 맥락에서 받아들일 때, 대화의 여지가 생깁니다. 실제로 양국은 과거 국경 총격 중단과 수자원 공유를 논의한 경험이 있습니다. 종교와 영토가 얽힌 이웃의 대립은 사우디와 이란 편에서도 같은 구조로 살펴보았습니다.
협력의 가능성과 반론
물론 알로센트리즘이 카슈미르의 귀속을 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주권과 자결처럼 양보가 어려운 사안에서는 이해가 곧 합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반론이 타당합니다. 핵을 가진 두 나라가 깊은 상호 불신 속에 놓여 있다는 현실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양국의 화해 시도는 국내 정치의 강경 여론에 번번이 가로막혀 왔습니다. 그럼에도 상대의 논리를 먼저 읽는 쪽이 우발적 충돌의 위험을 줄이고 파국을 늦출 수 있습니다.
결론 — 거울을 다시 보는 법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단의 거울을 사이에 둔 두 나라입니다. 거울에 비친 상대를 위협으로만 가정하면 카슈미르의 긴장은 깊어지고, 상대의 맥락으로 읽으면 공존의 길이 보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또 하나의 분단과 정체성의 거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을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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