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을 형제국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2026년, 두 나라는 다시 외교관을 추방하고 자위권을 거론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화해와 결렬을 오간 이 관계는 거울의 논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사우디와 이란, 무엇이 갈등을 만드는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수니파와 시아파, 아랍과 페르시아라는 이중의 경계 위에서 중동의 주도권을 다퉈 왔습니다. 2023년 중국의 중재로 국교를 정상화하며 한때 데탕트가 찾아왔고, 2025년에는 사우디가 이란을 형제국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26년 미국과 이란의 전쟁 국면에서 관계는 급반전했습니다. 이란이 미군이 주둔한 사우디 내 기지를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고, 사우디는 같은 해 3월 자국 내 이란 외교관을 추방하며 유엔 헌장의 자위권 조항을 거론했습니다. 예멘 내전을 비롯한 여러 무대에서 두 나라가 오랫동안 대리전을 벌여 온 역사도 그 배경에 있습니다. 종파와 민족, 그리고 지역 패권이 한데 얽힌 깊은 구조가 그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미러 이미징 — 상대를 거울로 보는 착각
미러 이미징은 상대를 나의 복사본으로 보는 착각입니다. 사우디는 이란의 혁명 수출과 대리 세력 지원을 패권 야욕의 증거로 읽고, 이란은 사우디의 미국 밀착과 군비 증강을 포위 전략으로 읽습니다. 양측 모두 상대의 방어적 행동조차 공세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한쪽의 안보 조치가 다른 쪽에는 위협으로 비치고, 작은 불씨가 지역 전체의 대리전으로 번지곤 합니다.
필자가 보기에 형제국이라는 말과 외교관 추방이 1년 사이에 오간 것은, 두 나라가 서로를 신뢰가 아니라 거울로 마주해 왔기 때문입니다.
알로센트리즘(Allocentrism)이란? 타자(Allo)를 인식의 중심(centrum)에 두는 사고방식입니다. 미러 이미징의 반대 개념으로, 상대를 상대의 언어와 논리로 이해할 때 비로소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알로센트리즘 — 상대의 눈으로 세상 보기
알로센트리즘은 세계의 중심을 나에서 상대로 옮기는 인지적 전환입니다. 사우디가 이란의 혁명 정체성과 포위 불안을 그 내적 논리로 이해하고, 이란이 사우디의 체제 안보와 지역 질서 유지 욕구를 그 맥락에서 받아들일 때, 대리전의 악순환이 느슨해집니다. 2023년의 국교 정상화는 바로 그런 전환이 잠시 작동한 사례였습니다. 강대국 전쟁에 휩쓸린 중동의 구조는 미국과 이란 편에서도 같은 렌즈로 살펴보았습니다.
협력의 가능성과 반론
다만 2026년의 결렬은 알로센트리즘의 한계도 보여 줍니다. 외부 강대국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변수 앞에서, 양국의 자체적 이해만으로는 관계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반론이 가능합니다. 종파적 정당성처럼 양보가 어려운 핵심 사안이 걸릴 때 이해는 쉽게 후퇴합니다. 그럼에도 데탕트의 경험은 적대가 운명이 아니라 선택임을 보여 줍니다.
결론 — 거울을 다시 보는 법
사우디와 이란은 형제와 적 사이를 오가는 거울 앞의 두 나라입니다. 거울에 비친 상대를 위협으로만 가정하면 중동은 다시 대리전의 늪에 빠지고, 상대의 맥락으로 읽으면 화해의 문이 다시 열립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갈등의 더 깊은 뿌리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을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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