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MI vs DP, 96과 80
모니터 뒤를 보면 구멍이 두 종류입니다. HDMI와 디스플레이포트입니다. 케이블만 맞으면 화면은 똑같이 나오는데, 왜 굳이 두 가지가 따로 있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흔한 답은 하나가 더 좋고 하나가 낡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규격을 만든 단체가 각각 공개한 문서를 읽어 보면, 갈린 지점은 성능이 아니라 그 규격을 만든 사람들이 어느 자리를 보고 있었는가입니다.
96과 80, 그리고 그 앞 세대
HDMI 포럼이 2025년 6월 25일에 공개한 2.2 규격은 최대 대역폭을 96Gbps로 밝히고 있습니다. 인증 케이블 이름은 울트라96입니다. 지원 해상도로는 12K 해상도에 120헤르츠, 16K에 60헤르츠까지 적어 두었고, 색을 온전히 담는 4대 4대 4 방식으로 8K 60헤르츠와 4K 240헤르츠를 10비트와 12비트 색으로 지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앞 세대인 2.1의 인증 케이블은 최대 48Gbps였습니다.
디스플레이포트 쪽도 같은 방식으로 보겠습니다. VESA가 2022년 10월 17일에 공개한 2.1 규격은 인증 케이블을 두 등급으로 나눕니다. DP40 케이블은 레인당 10Gbps를 네 개 레인으로 묶어 최대 40Gbps, DP80 케이블은 레인당 20Gbps를 네 개 레인으로 묶어 최대 80Gbps입니다.
앞 세대에서 현행 세대로 넘어오며 두 진영 모두 정확히 두 배를 올렸습니다. 다만 시점이 다릅니다. 디스플레이포트가 80Gbps를 내놓은 것이 2022년이고, HDMI가 96Gbps로 앞선 것이 2025년입니다. 숫자만 보면 나란한 경쟁처럼 보입니다.
미러 이미징 - 서로를 자기 자리에서 잽니다
거실 기기를 다루는 쪽이 디스플레이포트를 두고 하는 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왜 굳이 다른 단자를 쓰느냐, TV에는 꽂히지도 않고 사운드바는 어떻게 연결하느냐는 것입니다.
PC를 쓰는 쪽의 말도 정해져 있습니다. 모니터 여러 대를 케이블 한 줄로 엮지도 못하고, 노트북에 전원과 화면을 따로 꽂아야 하는 방식이 왜 아직 기본이냐는 것입니다.
두 말 모두 상대 규격이 자기 자리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가정합니다. 한쪽은 TV 한 대에 기기 여럿을 붙이는 자리에서 재고, 다른 쪽은 노트북 한 대에서 화면과 데이터와 전원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자리에서 잽니다. 재는 자리가 다르니 같은 단자를 두고 정반대의 평가가 나옵니다.
HDMI와 디스플레이포트를 가른 것은 기술 수준이 아니라 규격을 만든 사람들이 어느 자리를 보고 있었는가입니다. 두 렌즈의 정의는 핵심이론 페이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알로센트리즘 - 거실은 해상도를, 책상은 케이블 한 줄을 지킵니다
HDMI를 만든 곳은 HDMI 포럼입니다. 발표문은 이 단체를 가전과 개인용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와 케이블과 부품을 만드는 세계 주요 제조사들의 모임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규격의 라이선스는 HDMI LA라는 별도 기관이 대행한다고 밝혀 두었습니다.
이 진영이 파는 물건을 생각하면 기술 방향이 설명됩니다. 거실에서 팔리는 것은 화면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대역폭을 키우는 일이 곧 해상도 상한을 밀어올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12K와 16K라는 숫자가 발표문 앞자리에 나오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당장 그 해상도의 TV가 없어도, 다음에 팔 물건의 자리를 미리 만들어 두는 셈입니다.
디스플레이포트를 만든 곳은 디스플레이 산업의 표준 단체인 VESA입니다. 같은 발표문에서 VESA가 함께 강조한 것은 해상도 상한이 아니라 압축이었습니다. DSC라는 압축 기술로 전송에 쓰는 대역폭을 눈에 띄는 손상 없이 67퍼센트 넘게 줄일 수 있다고 적었고, 이 표준은 개방돼 있으며 로열티를 받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방향은 케이블 쪽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VESA는 디스플레이포트를 USB-C 단자에 얹는 길을 열어 두었습니다. 공식 안내는 케이블 하나에 영상과 초고속 USB와 전력을 함께 싣는다고 적고 있으며, 압축 없이 4K 60헤르츠 24비트 색을 보내면서 USB 3.1을 동시에 쓰고, 5K에 해당하는 가로 5120 세로 2880 화면도 압축 없이 지원하며, 케이블 한 줄로 최대 100와트까지 전력을 보낸다고 밝혔습니다.
| 항목 | HDMI 2.2 | 디스플레이포트 2.1 |
|---|---|---|
| 최대 대역폭 | 96Gbps | 80Gbps |
| 레인 구성 | 발표문에 명시 없음 | 네 개 레인, 레인당 20Gbps |
| 인증 케이블 이름 | 울트라96 | DP80 |
| 규격 공개 시점 | 2025년 6월 25일 | 2022년 10월 17일 |
| 규격을 만든 곳 | HDMI 포럼 | VESA |
| 문서에 적힌 라이선스 | HDMI LA가 대행 | DSC 표준은 로열티 없음 |
표의 마지막 줄은 범위가 서로 다릅니다. HDMI 쪽은 규격 전체의 라이선스를 누가 맡는가에 관한 문장이고, VESA 쪽은 압축 기술 하나에 관한 문장입니다. 두 문서에서 확인되는 범위가 거기까지라 그대로 적었습니다.
그래서 핵심 문장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HDMI가 16K를 앞세우는 것은 과장이 아니라 거실에서 파는 물건이 화면의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디스플레이포트가 압축과 USB-C를 앞세우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책상에서 필요한 것이 케이블 한 줄이기 때문입니다. 규칙을 만든 쪽이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가 결과를 가른다는 점은 네이티브 앱과 웹앱을 비교한 글에서 본 구조와 닮았습니다.
반론 - 규격 번호만 보고 사면 안 됩니다
첫째, 숫자는 케이블과 기기가 함께 따라야 나옵니다. 96Gbps는 울트라96 케이블이 있어야 하고, 80Gbps는 DP80 인증 케이블이 있어야 합니다. 두 단체가 케이블에 따로 이름을 붙여 둔 이유가 그것입니다. 살 때 보셔야 할 것은 규격 번호가 아니라 케이블에 찍힌 인증 이름입니다.
둘째, 규격의 대역폭과 실제로 흐르는 양은 다릅니다. VESA는 디스플레이포트 2.1b의 최대 전송량을 77.37Gbps로 적고 있습니다. 링크 속도가 80Gbps인데 실제 전송량은 그보다 작습니다. 규격에 적힌 숫자에는 오류 정정과 제어에 쓰는 몫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셋째, 두 진영의 구분은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습니다. HDMI 포럼도 개인용 컴퓨터와 모바일 제조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거실 규격과 책상 규격이라는 이 글의 구분은 각 단체가 무엇을 앞자리에 내세웠는지를 읽은 것이지, 회원사가 갈라져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론 - 무엇을 기준으로 고르면 되는가
TV와 게임 콘솔과 사운드바를 쓰신다면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HDMI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기기들이 그 단자만 달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대신 케이블을 사실 때 인증 이름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PC와 모니터를 쓰시고 주사율을 높게 쓰시거나 화면을 여러 대 두신다면 디스플레이포트가 유리합니다. 노트북 한 대로 끝내고 싶으시면 USB-C 단자가 있는지 확인하시면 됩니다. 영상과 데이터와 전력이 한 줄로 들어옵니다. 책상 위 케이블이 세 줄에서 한 줄로 줄어드는 것이 실제로 체감되는 차이입니다.
결국 이 비교도 규격의 우열이 아니라 만든 사람이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거실을 본 규격은 화면의 숫자를 키웠고, 책상을 본 규격은 케이블의 수를 줄였습니다. 지금 쓰시는 자리가 어느 쪽인지가 답을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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