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가 공장을 지휘합니다
AI가 화면 밖으로 나왔습니다. 대전 KAIST 산업경영학동 1층에서는 사람이 부품을 직접 만지지 않는 공장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피지컬 AI가 실험실을 벗어나 현장으로 내려온 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한국에서 먼저 나온 데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국제로봇연맹이 2026년 4월에 낸 2024년 기준 집계를 보면 한국의 로봇 밀도는 제조업 직원 1만 명당 1,220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세계 평균은 132대이고, 2위 싱가포르는 818대입니다. 2019년 이후 해마다 평균 7퍼센트씩 늘어난 결과입니다. 로봇을 이미 이만큼 깔아 둔 나라에서 다음 질문은 몇 대를 더 놓을 것인가가 아니라 이것들을 어떻게 한 몸으로 움직일 것인가가 됩니다.
카이로스는 무엇을 실증하고 있습니까
KAIST는 지난 3월 대전 본원에 피지컬 AI 실증랩 카이로스를 열었습니다. 이름은 KAIST AI 로봇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의 약자이며, 규모는 390제곱미터입니다. 장영재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팀이 10여 년간 쌓아 온 원천 기술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전검증 사업을 통해 실제 공간으로 구현한 결과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5년 7월 산업 특화형 피지컬AI 핵심기술 PoC 사업을 공고하면서 목표를 피지컬 AI 기술주권 확보라고 명시했습니다.현장은 층층이 움직입니다. 천장에는 웨이퍼이송장치 레일이 깔려 있고 바닥에서는 자율주행로봇이 상자를 나릅니다. 벽면에는 셔틀 선반이, 가운데에는 협동로봇 작업대가 있으며 한쪽 끝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정밀 작업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핵심은 이 이기종 장비들이 하나의 운영체계 안에서 함께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기존 공장 자동화가 장비 단위였다면, 피지컬 AI는 공장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처럼 다룹니다.
명령이 코드가 아니라 말로 내려갑니다
관제실 화면 한쪽에는 자연어 기반 AI 에이전트 다비스의 채팅창이 떠 있습니다. 시연에서 관계자가 6번 셔틀에 캐리어가 보이지 않는데 시스템에는 있다고 나온다며 상황을 묻자, 다비스는 적재 감지 센서가 캐리어를 계속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을 지목하며 센서 점검을 권했습니다.
이어 해당 셔틀을 유지보수 구역으로 옮겨 달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다비스는 셔틀의 식별자와 유지보수 구역 위치를 확인해 지시를 내렸습니다.
안전 관리도 같은 체계 안에 있습니다. 작업자가 안전모를 쓰지 않고 구역에 들어서면 즉시 알림이 뜹니다. 이송장치가 머리 위로 운행하는 구역에 사람이 들어서면 침입으로 인식해 구역 전체를 차단하고 안에 있는 로봇을 원격으로 정지시킵니다.
피지컬 AI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면 안에서 틀린 답은 고치면 그만이지만, 현실 공간에서 틀린 판단은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진짜 경쟁력은 통합과 표준화입니다
디지털 트윈도 함께 구축됐습니다. 가상 시운전과 실시간 모니터링, 고속 시뮬레이션 세 기능으로 나뉘어 있어 새 장비를 들이거나 운영 방식을 바꾸기 전에 가상 공간에서 먼저 돌려 볼 수 있습니다. 투자 대비 수익과 처리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입니다.
구성에는 마키나락스와 노타, 모벤시스, 캔탑스, 다임리서치 등 국내 기업이 11개 분야에서 참여했습니다. 해외 솔루션을 들여와 짜맞춘 것이 아니라 센서부터 제어기와 소프트웨어, 로봇까지 데이터 처리 전 구간을 국산 기술로 묶어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장영재 교수는 표준화를 강조합니다. 지금의 공장 자동화는 선로 폭이 제각각인데 기차를 그때그때 맞춰 만드는 격이어서 비용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데이터 표준 프레임과 인터페이스를 미리 정립하면 구축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봅니다.
단품이 아니라 공장을 팔아야 합니다
수출 전략에 대한 관점도 분명합니다. 로봇이나 제어기를 하나씩 팔아 일본, 중국과 정면으로 겨루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공장 전체를 하나로 묶어 넘기는 다크팩토리 턴키 수출입니다.
실증도 이미 진행 중입니다. 카이로스를 구성하는 요소 기술 가운데 일부는 국내 30여 곳 공장 현장에 적용돼 있습니다.
피지컬 AI의 다음 경쟁은 로봇 한 대의 성능이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로 엮는 통합 역량에서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 통합을 실제로 떠받치는 것은 현장에서 추론을 돌리는 연산 장치입니다. 같은 AI를 두 갈래 설계로 나눠 처리하는 방식은 GPU와 NPU를 다룬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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